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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정보

중3 역사 교과서 스토링 텔링

by 프렌치토마토 2021. 6. 18.

근대화를 향한 과정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성향은 힘의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힘이 있으면 힘이 없는 약한자들을 무참히 짓발고 다닌다. 그리고 무차별 공격과 경제적 수탈을 부끄러움 없이 행해집니다. 앞에서 1700년대부터 이어진 유럽의 힘이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일본은 더욱 무차별적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하게 됩니다.

일본의 불평등 조약 .미국과의 불평등 조약, 뒤이어 영국, 프랑스, 프랑스군의 불평등 조약

단절된 문화패쇄 정치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100년 넘는 시간을 일본보다 뒤처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1790년 이후부터 망하는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왕실은 왕실 대로 몰락하고 있었고 철저히 양반사회이던 조선은 세도들이 권력의 대한 욕망에 사로 잡혀 국제정세를 바로 읽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몰락한 양반들은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화가 단단히 난 농민들은 납세 때문에 먹고 살기도 빠듯하였습니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었는데 양반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이 생겨 났으니 양반중심사회는 이미 물이 많이 흐려진 뒤었습니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가만히 있었던거는 아니였습니다.

고종은 국가적으로 재빨리 신식군대(별가군)를 만들고 일본 정보에 대해 전해주는 지금 같은 일본대사관을 창설하여 일본의 정보를 보고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수신사)

청나라에 군대 무기 제조를 배우기 위해 공무원들을 발령을 보내기도 하였다.(영선사) 그리고 군사 훈련법도 배워오도록 하였습니다.

 

성리학을 배운 유생들은 외교를 거부 하자며 항일에 적극 반대 입장이였습니다. 이 단체는 훗날 의병항쟁계승이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국가권력 왕실의 힘이 부실해진 나라는 민족정신으로 이어져 국가가 아닌 단체가 움직이는 구조로 변화가 됩니다.

모든 요소에 국자 자금을 지원하기엔 역부족이였습니다.

이역사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더 적나라한 사건들을 쓰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길 원합니다. 쉽게 역사관을 이해할려면 근대화가 어떻게 현시점까지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근대화의 움직임에 우리나라에 큰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갑신정변갑오개혁이다.

이제부터는 단체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는 민중들의 힘을 합치게 됩니다. 우리의 광화문의 도가니는 지금 이때의 저력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갑신정변1884은 민족들의 쿠테타 였고 반란이고 혁명적인 사건이 됩니다. 이미 천주교 교리가 이 땅에 뿌려지면서 하나 둘씩 고정관념처럼 되어있던 양반중심사회에 평등사상은 참으로 놀라운 것 이였습니다. 이런 교리들이 평범한 누군가에게 들어가고, 천민에게 들어가고, 부녀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양반들에게 들아가고 소문이 자자하게 났었습니다.

이런 개화의 바람은 농민들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끌어주는 것이 되었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던 농민들에게는 이런 평등사상은 소망과도 같은 꿈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들은 나중에 '동학 농민 운동'이라는 신분질서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고 일찍이 개화하여 서양의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동학 농민 운동으로 전개가 됩니다. 동학 농민 운동은 성경적인 교리를 수용했다기 보다 그냥 그 당시 그 사회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가지고 온 것입니다. 평등은 하지만 성리학적인 사상도 붙여 놓고 것입니다.

'갑오개혁189'4 평등사회 제도 지향하며 동학 농민 운동의 결과물을 만드게 됩니다.

개혁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엄청난 단어임을 눈치를 채셨으면 합니다. 갑오개혁이 일어나고 사회, 경제, 정치가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고 말죠 확실한 정치적인 요소의 성격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에 적지 않게 당황한 일본은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를 자기 나라처럼 여기고 슬금 슬금 도독질 하듯이 간섭이 아주 심하게 되었습니다. '동학 농민 운동1894'년에 일어나면서 위기감과 우리 민족이 호락 호락 하지 않는 것을 눈치 챈 일본은 민족운동을 어느정도 인정해주면서 겁을 내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해 청나라와 전쟁(청.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으로서는 지금 조선은 군사적 식량을 군부대에 보급을 해야 하고 노동력을 보충하는 도구였기에  이 운동이 흐지 부지 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청나라와의 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더욱 조선인에 대한 자기들의 우세함이 커지면서 우리 민족은 노예처럼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던 중 러시아와 황실과 손을 잡고 일본의 우세함을 빠져 나가기 위한 왕실의 움직임을 감지한 일본은 우리나라  국모 명성왕후를 죽이기에 이릅니다. 이것을 '을미 사변1895'입니.

명성 왕후의 죽음으로 나라가 뒤 숭승해진 지도자들을 일본에 저항하고자 바로 '을미개혁1895'이 일어납니다.

을미 사변을 통해 을미개혁은 나라의 제도 법률를 바꾸고 학교를 세워 교육에 폭을 확대하였고, 머리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라 소중히 여긴 오래된 긴 머리의 관습을 없애며 단발령으로 머리카락을 자르게 하면서 적극적인 개화에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에 고종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을 하게 되는데 이일로 인해 조선의 자주성이 국민 에게나 외교적으로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이것이 '아관파천1896'이다.

고종은 1년만에 경운궁으로 환궁을 하며 우리나라도 일본 황제처럼 고종을 황제로 칭송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다음해1897년 이것을 실행하게 됩니다.

의미있는 행사였습니다. 국가권력을 강화하고, 자주적인 나라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이었다.

'광무개혁1876'이러한 노력은 그래도 어떻게든 맞서 우리나라를 지키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790년대부터 내려온 뒤쳐진 일본과 각국 강대국들 속 경쟁 구도는 열세한 조건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부족해 보입니다.

1876년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나라의 이름이 바뀐다. 조선 시대는 500년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복습>근대화 향한 움직임

1884갑신정변- 반란 혁명 쿠데타을 말한다. 신분 해방 ,양반 중심 신분질서 붕괴

1894동학 농민 운동-전원 외세를 배척하고, 탐관오리들 숙천 요구

전주성 함락을 점령합니다. 다급해진 왕실은 청나라에 지원군을 요구합니다.

이로 인해 일본 사람들 에게도 파병 구실줌

1894.일 전쟁-일본군 경북궁 점령

제국주의- 군사 경제를 침략한다. 힘이 센 나라는 약한 나라를 침략주의적이다.

1894갑오개혁-평등사회제도 지향 사회, 경제, 정치 변화

1895을미사변-명성황후 죽음

1895을미개혁-명성황후 죽은후 제도 법률 바꿈

1896아관파천-고종이 러시아공사관 피신

1897광무개혁-자주적인 나라 강조(황제 칭호)

 

1897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꿈

 

이 이후부터 다른 나라의 문물들이 들어오면서 시대의 급변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때 소소하게 우리 한 개인, 개인들은 열심히 자기의 소신을 찾아 나라를 살리는 길을 찾아나서고 있습니다. 그 중에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고 유럽으로 향하는 이도 있었고 중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방 나라의 학교들에 들어가 공부를 하며 대한제국의 앞날에 필요한 것들이 알려고 노력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고종에게 상소를 많이 올리며 국가를 위해 배움이 있는 자들은 애국심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서재필은 갑신정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걱정하며 학문을 공부하며 귀국했습니다.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만들어 대규모 민중 참여 만민 공동회를 만듭니다. 국민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평등사상은 이미 시작되었고 국민의 뜻은 국정에 방영 하는 국민 참정권도 요구하였습니다. 서구식 도입을 정치체제를 입헌군주정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개몽 운동을 전개하므로 지식수준이 낮거나 의식이 덜 깬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위해 노력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운동은 겨우 2년 밖에 지속하지 못하고 서재필을 국가의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버렸지만 이런 지식인의 용기 있는 행동은 국민들에게 자주권을 넘기며 국가에 국민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균일한 양질의 교육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옛 추억의 사진속에 허허 벌판에 건물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곳에 들어가는 문이 하나 생기는데 그것의 이름은 독립문이라고 한다. 독립문은 특별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가면 이곳을 꼭 방문하는 코스입니다. 독립문인데 국가의 큰 행사를 하는 곳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명예로운 자들의 이름이 벽에 적혀있고 그들의 영혼을 기리며 뜨겁게 나불거리는 작은 불꽃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프랑스인을 자랑하는 분들에게 꽃을 헌화하며 끝나지 않은 조국 사랑에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독립문 건설하여 우리는 자주적인 국가이다.를 직접 보여주는 의미있는 상징물이 이때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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